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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시인선 090)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시인선 090)
  • 저자허은실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7-10-24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4-0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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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허은실 시인의 첫 시집을 펴낸다. 데뷔 7년 만에 선보이는 시인의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는 총 4부에 걸쳐 63편의 시가 나뉘어 담겨 있는데 제목에서 유추가 되듯 ‘나’와 ‘잠깐’과 ‘설움’이라는 단어 셋에 일단은 기대고 시작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를 대변하는 비유로서의 ‘나’와 생이 긴 듯해도 찰나라는 의미로의 ‘잠깐’과 사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한데 모았을 때 그 교집합 정도로의 ‘설움’이라는 말이 어쩌면 우리가 시로 말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이며 그 근간의 맥이다 싶기 때문이다.

    이 시집 속 마지막 시까지 다 읽고 났을 때 우두커니 선 내 앞에 덩그러니 남는 감정은 묘한 통증이었다. 이를테면 짙고도 깊고도 잦은 통증. 그래서 참 막막한 통증. 설명할 길은 만무하나 짐작은 되고도 남는, 용케도 집힌다면 검은 어떤 덩어리의 묵직한 만져짐이라고나 할까. 특별히 머리가 쑤시는 것도 가슴이 조이는 것도 허리가 욱신대는 것도 무릎이 저린 것도 아닌데 어딘가 참 아프기는 하여서 마음은 눈물범벅인데 말하려 하면 입이 붙어 벙어리가 되는 그 답답함이라고나 할까.

    허은실 시인은 사는 일에, 또 살아온 일에 대해 하고픈 말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그때 다하지 못하고 애써 꾹꾹 눌러 참아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쉽고 속상하고 시렸지만 돌이켜보면 또 참아내길 잘했다고 틈틈 자위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항아리 속 엄지손톱만큼의 곰팡이도 피지 않고 힘 있게 잘도 묵어가는 장처럼 시인의 시들은 특유의 깊은 맛을 가진 듯하다.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참았을 때 더하고 더할 사람들의 귀 기울임, 그 휘어지는 몸의 힘을 믿었던 이유가 아니려나.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으나 그럼에도 사람만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는 정공법을 믿는 선한 의지의 소유자가 시인인 까닭이 아니려나.

    ‘입술에 앉았던 물집이’ 이제 겨우 아물어가는데 자꾸만 나아가는 상처를 맛보려 하는 ‘혀’의 예의 그 분주함, 뒤척임, 부지런함, 호기심이 이 시집 한 권을 부려냈다. 딱지가 앉고 나면 덮을 수 있는 상처의 기억도 덕분에 생생할 수 있었다. 그 즉시 울부짖음으로의 엄살로부터 한참을 떠나온 뒤니 덕분에 거리감을 가질 수 있었다. 두고 본다는 일, 지켜본다는 일, 잴 수 없지만 분명 ‘있는’ 그 멀어짐 덕분에 형성할 수 있었던 공감대.

    시인은 끊임없이 자문한다.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우리 사는 일을 두고 시인이 내린 정의는 이러하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고. 갓 태어난 아기가 “뱃속에서 육십 년쯤 살고 나온 얼굴”로 보이는 시인만의 예민한 촉수가 헤집어대는 생과 사의 안팎은 놀랍게도 어떤 구분이란 게 없다. 죽은 아비와 죽은 애인들의 다녀감도 일상이고 “다시는 태어나지 말”라고 아기에게 말을 붙이는 시인의 호명 같은 허명도 일상이다. 나는 나인데 “누군가 나를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그 느낌, 그 기척, 그 수군거림. “어둔 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닮은 이”를 발견한 뒤로 “문득 나 또한 누군가의 몸에 세” 들어 살아간다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일찌감치 지운 채 “산 사람이 귀신이 된 사람에게 엎드리는 형식에 대해” 다만 시인은 아물어가는 입술을 자꾸만 뜯을 뿐이다.

    어차피 “꽃은 시들고 불로 구운 그릇은 깨”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있던 꽃이 없었던 꽃이 되고, 깨지기 전의 그릇이 없었던 그릇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있었는데 없던 존재로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사라져갈 뿐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세상 만물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세상 만물 하나하나의 이름이 내 이름만 같고 세상 만물 하나하나의 어제오늘이 나의 어제오늘만 같다. 생각해보셨는가들. “당신의 뒤척임을 이해하느라 손톱이 자”란다는 말을.

    특히나 허은실 시인의 언어는 밀도 있는 여성의 말이다. 여성의 말만이 가질 수 있는 ‘부드러운데 센’ 일침이란 것이 분명 있다고 보는 것이다. 너그러운데 안 들여보내준다. 따뜻하게 쓸어보는데 차갑게 밀어낸다. 둥글어서 만만한데 그 둥긂이 안 멈추고 계속 굴러간다. 그 ‘둥긂’이라는 것, 끝끝내 100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구르고 구르다가 모서리를 지우고” “무덤의 둥긂”으로 “다른 씨앗” 그 “0이” 되겠다는 “누런 바가지”여, “부엌 한구석에 엎디어 쉬고 있는 엉덩이”여.

    몸이란 것도 마음에 세 든 바 있어 시인은 자주 아팠고 여전히 아프고 이러다 영 아픔을 모르는 그곳에서 잊은 아픔을 불러내어 잊힌 그 아픔에 공감하며 살아갈 테지만, 그런 연유 속의 시인이기에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참 애틋할 정도다. “사방 유리벽에 이마를 찧으며 우리는” “24시 피트니스 센터 전면 유리창” 같은 생을 한데 뛰며 산다는 연대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시인인 탓이렷다. “우리의 통점엔 차도가” 없지만 “골목을 흔들며 떠나는 뒷모습을 오래 보아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우리라지만 “흩어지면 죽”고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는 마음으로 시인이 내민 손은 글쎄 “지문이 다 닳”아 있다.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필경 그랬을 사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러다 “이러다 봄이 오”지 않겠나. 너니? 나야? 물음 속에 저기 대답하는 ‘응’.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너와 나로 이루어진 ‘응’의 존재들. 이제 아시겠는지. “‘응’은 둥글”고 오늘도 “멀리까지 굴러가기 위해 굴러가서 먹이기 위해” “나가서 너에게 굴러”가는 이 땅의 모든 ‘응’은 하여 이 땅의 모든 엄마라는 사실. 우리 모두 ‘응’으로부터 던져진 ‘0’의 씨앗들. 죽어서도 잘 자랄 것이기에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잠깐 설웁다 가는 것으로, 그렇게 합의를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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