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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 저자야마모토 시치헤이
  • 출판사글항아리
  • 출판년2016-10-27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4-0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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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문화론의 대가로 알려진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의 하급장교로서 참전했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1942년 징병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여, 패전 후 필리핀 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1947년에 본국에 돌아온 그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불태우던 자신의 나라가 가진 뿌리 깊은 콤플렉스를 지적하며 일본 특유의 조직론과 사고방식을 그의 전쟁 경험의 흐름에 따라 분석해나간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친 뒤 일본이 벌인 가장 어리석은 전쟁으로 평가되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제국 육군은 ´사고 정지´, ´기백 연기´, ´사물 명령´ 등의 단어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기이하고 부조리한 조직적 패착을 드러내며 자멸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생 신분에서 갑자기 장교로 차출된 저자는 제 스스로도 몰인간적인 행위들을 저지르긴 했으나, 이미 전장에서부터 일본 제국 육군에 거리감을 두고 하나하나 관찰해나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를테면 ´공기´라는 단어를 통해 일본인들이 무언의 중지가 가리키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등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전쟁포로기 체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 고마쓰 신이치의 〈포로일기〉 등과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이가 써내려간 귀중한 체험 기록으로서 전쟁국가 일본의 패착을 잘 드러내고 있다.





    누락 누락 누락 누락투성이……

    이것이 바로 일본 제국 육군의 실체였다





    이 책은 일본문화론의 대가로 알려진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의 하급장교로서 참전했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1942년 징병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여, 패전 후 필리핀 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1947년에 본국에 돌아온 그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불태우던 자신의 나라가 가진 뿌리 깊은 콤플렉스를 지적하며 일본 특유의 조직론과 사고방식을 그의 전쟁 경험의 흐름에 따라 분석해나간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친 뒤 일본이 벌인 가장 어리석은 전쟁으로 평가되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제국 육군은 ‘사고 정지’ ‘기백 연기’ ‘사물 명령’ 등의 단어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기이하고 부조리한 조직적 패착을 드러내며 자멸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생 신분에서 갑자기 장교로 차출된 저자는 제 스스로도 몰인간적인 행위들을 저지르긴 했으나, 이미 전장에서부터 일본 제국 육군에 거리감을 두고 하나하나 관찰해나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를테면 ‘공기’라는 단어를 통해 일본인들이 무언의 중지가 가리키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등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전쟁포로기 체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 고마쓰 신이치의 『포로일기』 등과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이가 써내려간 귀중한 체험 기록으로서 전쟁국가 일본의 패착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것이 누락, 누락 또 누락……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4월의 어느 날, 졸업이 앞당겨진다는 발표와 함께 6월에 징병검사를 받고 그로부터 6개월 후에는 전장에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징병검사라는 군대와의 첫 대면에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른바 ‘돗쓰쿠’, 일종의 제재적 행위다. 특수한 상황 하에 ‘특정 역할이 주어진 위치’에 서는 순간 그 사람의 태도가 돌변하는 현상, 지극히 일본인다운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전에 주인공의 집에 방문해 물건을 팔기 위해 굽신굽신하며 상점 주문을 받으러 다니던 배달원을 신체검사장에서 맞닥뜨렸는데, 이제 징병과 관련한 일을 맡게 된 그는 시치헤이에게 “어이, 거기.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빨리 빨리 접수부터 하란 말야!”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광경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그 배달원은 대상이 손님이든 군대든 언제나 ‘대의를 섬기는 사상’에 충실했으며, 사대주의적 국가의 군대에 적절한 ‘모범적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군은 틀림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고, 전국의 진상은 알 수 없었지만 수뇌부가 허둥대고 있다는 사실은 감지할 수 있었다. 결국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오늘부터 교육 변경이다. 대미 전투를 주체로 한다. 이것을 ‘A호 교육’(미국을 적국으로 상정한 군사 교육)이라 한다.” 이에 저자는 놀라움과 의문의 해소, 분노가 뒤섞인 기묘한 감정적 응어리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누락투성이 중에서도 최대의 누락이었던 것이다! ‘A호 교육’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받아온 교육은 일관되게 대소비에트전이었으며 상정한 전장 역시 언제나 북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이었지 동남아 지역의 정글은 아니었다. 교관들도 미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전장에 나간 육군은 현지의 기본적인 경제력 및 특수성 등 정보에 무지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수송선을 타고 마닐라에 상륙한 날, 필리핀의 군사 요지와 현지 사정을 기록한 ‘간부 필독’ 서류 등을 건네받고 충격에 사로잡혀 망연자실한다. 동아시아 해방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어야 할 일본제국 육군이 실은 원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시점에서 정확한 기술을 한 고마쓰 신이치의 『포로일기』의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보새끼’ ‘도둑놈’ ‘이놈’ ‘이 자식’ ‘살인자’ ‘너 같은 건 죽어버려’. 증오에 찬 표정으로 악을 쓰며 목을 긋는 흉내를 내고, 돌과 부러진 나무토막들이 날아온다. 새총을 쏘기도 한다. 옆 사람은 머리에 돌을 맞고 피가 났다.’

    일본군은 한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애매모호함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큰 상처를 입힐 뿐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결국 애매모호한 자에게는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일본군에게는 ‘전쟁 체험’이나 ‘점령 통치 체험’이 없었으며 이민족 공존사회, 혼혈사회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지금도 역시 모른다고.





    실제로 존재하지만 숫자로는 없다



    본토에서는 ‘현지에서 지급한다’ ‘현지에서 조달한다’는 공수표를 남발했으나 막상 현지에 와서는 그 대부분이 이행되지 못했다. 현지에 가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장에 나와 작은 끄나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온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필리핀에는 말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말이 없어 스스로 쳇다리 끝을 끌어안은 상태로 포차를 끌고 온 육군은 비로소 현지 사정을 알고는 자기 의지로 사고를 정지시켜버린다. ‘사고 정지’, 결국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 육군의 하급 간부와 병사들에게 항상 존재했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일본 육군에게는 기본적으로 ‘숫자만 맞으면 그걸로 됐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내실은 전혀 따지지 않는 형식주의, 바로 ‘고무줄 숫자’라는 사항이 있었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처벌이고 숫자만 맞으면 이하 불문이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했다. 일본군은 미군에게 패한 것이 아니었다. 자전하는 ‘조직’ 위에 군림했던 ‘불가능한 명령과 이에 대한 고무줄 숫자 보고’로 구성된 허구의 세계를 ‘사실’로 여겼기 때문에 현실에서 미군에 의한 타격을 받고서 허구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자 항복한 것이었다. 또한 제국육군은 일종의 허구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상한 연출력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이런 연출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연기력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기백’이라는 기묘한 것이다. 분명 전투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력과 ‘강한 척하는 연기’에 불과한 히스테릭한 ‘기백 과시’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일본제국의 육군은 허구의 세계에서 기백 연기를 하고, 고무줄 숫자 보고를 하며 스스로 잠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곳에 평생 앉아 있고 싶었어”



    필리핀에 있던 육군은 8월 15일을 알지 못했다. 8월 27일에 항복 명령이 내려오자 분초는 해산했다. 그는 눈앞의 영원불변할 것 같은 분지를 바라보면서 밀려오는 공허함에 언제까지나 앉아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갈망해온 안식이었으며 수용소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도 그와 같이 말했다. “나는 그때 그곳에 평생 앉아 있고 싶었어”라고. 전쟁의 끝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자결이란 이름의 확실한 타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책임한 명령으로 인해 고난 끝에 자살을 강요받아 죽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을 예견함으로써, 굴욕적인 죽음을 피하고자 미리 자살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할힌골 전투에서의 병사들에 대한 자살 강요를 세세히 기억해낸다. 명예는 조직의 것일까 혹은 개인의 것일까? 제국 육군에는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었고, ‘조직의 명예’ 외의 다른 명예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서 포로로서 수치를 당하기보다 개인의 명예를 찾으라는 명목 아래 자결하게 하고는 자결한 이들을 ‘명예의 전사’라고 칭하는 것은 얼핏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포로 없음’이라는 보고를 위해 조직의 명예를 절대시한 나머지 개인을 말살시켰던 데에 불과했다. 이것이 제국 육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전하는 ‘조직의 명예’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을 파멸로 몰고 갔다. 저자는 ‘해방자’인 일본군이 어째서 그 이전의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 미움을 받았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 이유는 동물적 공격성만 존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을 형성하여 어떤 질서를 확립할지에 관한 계획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분명 전쟁은 끝났고, 제국 육군은 파멸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적어도 당시의 상식에서는 파산 뒤에 청산이 있어야 했다고. 제3자도 방관자도 아니었고 일본제국 육군의 소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요구가 있다면 적어도 ‘청산인’에게는 모든 것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러한 요구에 응해야 했던 상황은 전혀 없었고 이것으로 인해 야마모토는 주눅 들어 있어야 했다고 말한다.

    “푸른 하늘을 한 번 더 보고 죽고 싶다.”

    전투를 위해 10여 일을 동굴 속에 있다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위와 같은 말을 통해, 누구에게나 전쟁은 참혹하다는 것을 숙연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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